집 주변 풍경들
열려 있던 시간보다 닫혀 있던 시간이 훨씬 많았던 ‘Ebbuda(이쁘다)’ 옷가게가 문을 닫고 나가자, ‘명품 구제 옷’이란 노란 현수막 하나 덜렁 걸어놓고 또 다른 옷가게가 간판도 없이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구제 옷 가게 역시 서너 달 만에 문을 닫았고 며칠 전부터는 ‘열펌, 염색 전문, 현 미용실’이 장사를 시작했다. 이전 가게 주인들은 모두 50대로 보이는 여성들이었으나 ‘현 미용실’ 사장님은 많아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여성이다. 맞은 편 ‘알리바바 도덧&커피’의 젊은 사장님은 결혼하셨을까?
우리 집 맞은 편 ‘삐삐분식집’도 간판은 그대로지만 두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바로 옆 건물 1층에 있는 ‘김밥천국’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인데, 최근에는 젊은 청년 사장이 약간은 철지난 유행가나 팝송을 커다랗게 틀어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주인이 바뀌기 전, 깡마른 아주머니가 장사를 하고 있을 때, 두어 번 들러서 떡볶이와 어묵을 사먹어 봤는데, 맛으로 승부하는 집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젊은 사장님의 음식 솜씨는 어떨지 궁금하다. 김밥천국의 경우, 관록(체인점이니까)이 있어서 그런지 놀랄 만한 맛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기본은 하는 편이고, 무엇보다 바로 옆이 문일여고 정문이라서 여학생들이 많이 찾아 늘 북적거린다. 쉬는 시간이나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해서 기동력 있게 먹거리를 사와야 하는 ‘3선 슬리퍼들’은 불과 몇 미터 차이가 안 나더라도 정문에서 가까운 집을 찾게 마련이다. 우리 집 바로 옆 건물 1층의 ‘문성문구’도 ‘삐삐분식’과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문일여고 정문 앞에 있는 ‘푸른문고’에 학생손님들을 대부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입지적 불리함 때문에 속을 많이 태우고 있는 형국이다. 사장님이신 대머리 아저씨가 가게 밖에서 담배 피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것은 4년 전, 앞으로 이곳에서 얼마를 더 살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보다는 정이 많이 든 건 사실이다. 특히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는 단독주택에 살게 되면서 은근히 걱정을 많이 했다. 연로한 어머니와 살아야 하는 집이고, 또한 덥고 춥지 않으려면 그만큼 연료비를 많이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동주택인 아파트에 비해 단독주택의 에너지효율이 낮은 건 사실이다. 실제로 냉난방비가 만만찮게 나온다. 하지만 아파트 공동 관리비를 생각하면 지출금액은 결국 거기서 거기다. 단독주택은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다. 그리고 남 신경 쓸 일도 없고,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고추나 상추 등속을 심을 수도 있으며 별구경 달구경하기도 정말 좋다. 장단점을 주르르 써놓고 하나하나 상쇄해 나가다 보면 단독이나 아파트나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둘 중 하나가 장점을 일방적으로 독점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아파트를 선호하겠지만 나처럼 간섭(가끔은 관심까지도)이 두려운 글쟁이에게는 층간소음이나 코드가 맞지 않는 이웃들의 대책 없는 관심이 싫기 때문에 단독주택에서의 삶이 훨씬 매력적인 게 사실이다. 물론 집 없는 나는 내 생의 말년을 어떤 형태의 주거 공간에서 보내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임대아파트에서 보내게 될 확률이 80% 이상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아무튼 나는 지금의 내 삶의 조건들이 매우 맘에 들기 시작했다는 말을 이리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