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문득 불안해 보였다
신포동에서 약속 하나를 마치고 일찍 구월동으로 넘어왔다. 사실 약속이라기보다는 물건을 전해받기 위한 만남이었기 때문에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마무리 될 일정이었다. 그나마 차도 마시지 않은 채 물건만 받고 헤어졌다. 두 번째 약속까지는 두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집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기에는 애매한 시간, 약속장소는 갈매기였다. 하지만 4시 조금 넘은 시간에 혼술 할 것도 아니면서 갈매기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교보에 들러 신간들을 둘러봤다. 알고 있는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집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이런 식의 만남(아는 작가의 신간과 독자로서 만나기)은 유익하다. 실제적인 유익함이라기보다 멘탈(mental)을 강화시켜준다고나 할까. 글쟁이로서 자극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부러움을 느끼지만 가끔은 지인의 저서를 들쳐보고 난 후 “함량미달이군! 서둘러 책을 냈나 봐.”하며 유치한 승리감에 킬킬거릴 때도 있다. 하지만 부러움을 느끼든 유치함을 느끼든 두 경우 모두 내 마음속으로부터 창작 의지를 촉발시킨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선배는 약속시간에 맞게 나와 있었다. 정년을 앞둔 선배는 후련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지만, 아직 팔팔한 나이에 직장에서 물러난다면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여유롭게 인생 2막을 펼쳐보세요.”라는 진부한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명민한 사람이니 남은 시간들을 허투루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선배처럼 한 종류의 사회적 삶이 일정한 시점에 종료되면 새로운 종류의 개인적 삶을 펼칠 수 있는 명확한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므로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뻔한 삶을 사는 나보다 오히려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마시고 일찍 돌아왔다.
생각이 많은 하루였다.
미래가 문득 불안해지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란 복음 성가 가사처럼 살기에는
내 삶이 너무 성긴 것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