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장마인가 하루 종일 비
하루 종일 겨울비가 장맛비처럼 내렸다. 오늘은 기독교의 큰 절기인 추수감사절, 성서에서는 범사(凡事)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오늘만큼은 한 해의 추수에 대해 콕 집어 감사하는 날이다. 이스라엘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일 년을 견뎌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악조건 속에서 젖과 꿀이 넘칠 정도는 아닐지라도 한 가족, 더 나아가 부족이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수확물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건 분명 야훼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 당연히 감사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도 가을걷이가 끝나고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제천행사나 마을축제가 있었다. 오늘까지 이어지는 절기 행사로는 추석이 바로 추수감사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나도 올 일 년, 수확한 것이 무척 많다. 물론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대차대조하면서 하나씩 상쇄하면 대충 제로섬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마이너스가 아니라 제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늘 밑지며 살아온 삶이다 보니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며 한 해를 견딘 게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것이다. 야훼의 은총이든 우연의 소산이든 아니면 지인들로부터의 구체적 도움이든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모종의 큰 힘이나 사랑으로부터 매 순간 도움을 받았다면 그 도움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선물처럼 비가 내렸다. 다행히 나에게는 우산이 있었다. 우산 아래서 어머니는 내 팔짱을 꼭 끼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해 매우 천천히 걸었고 어머니는 나를 위해 조금 빨리 걸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듣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