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엄마의 맛
달빛사랑
2019. 11. 15. 13:31
엄마는 주방에서 오전 내내 분주했다. 한 동안 방치됐던 시장 봐 온 반찬거리들이 냉장고에서 줄줄이 불려나와 반찬으로 완성되어 식탁 위에 올랐다. 파래초무침, 삶은 양배추, 미역줄거리볶음, 배춧국, 어묵볶음, 시금치무침, 배추겉절이, 호박볶음, 구은 김 등 간만에 식탁이 무척이나 풍성해졌다. 재료와 양념을 늘어놓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반찬을 완성하는 엄마의 모습은 마치 노련한 연금술사처럼 보였다가 이내 성스러운 신탁을 수행하는 사제처럼 보였다. 입맛을 잃어 눈대중 손대중으로 간을 보지만 엄마가 내는 맛은 내 입맛의 경계를 터무니없이 지나치는 법이 단 한 번도 없다. 소소한 행복을 한 주걱 퍼서 밥그릇에 가득 담는, 겨울비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