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좀 색다른 '백조의 호수'를 만나다

달빛사랑 2019. 10. 17. 23:30






후배의 배려로 강남(엘지아트센터)까지 가서 공연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매튜 본 감독의 이름은 간간히 들어보긴 했지만 그의 작품을 직접 극장에서 만난 건 (당연하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배우들의 가쁜 호흡소리와 올리브기름을 바른 듯 조명을 받아 더욱 번들거리던, 땀에 젖은 그들의 벗은 상체를 무대 지근에서 듣고 볼 수 있는 VIP석에 앉아 관람했으니 촌놈으로서는 신선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차이콥스키의 발레모음곡 백조의 호수야 정상적인 중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겠지만 이번 매튜 본의 뮤지컬(인가? 무용극인가)은 기존의 여성 발레리나가 담당했던 백조를 남성 버전으로 바꾼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따라서 기존 발레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우아함과는 결이 다른 매우 웅장하고 파워풀한 느낌을 받았다. 내용 자체는 무척 비극적이었지만 두 시간 반에 육박하는 공연 시간을 고려했기 때문일까, 극중에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지속적으로 제시되어 비애의 감정이 증폭됨으로써 받게 되는 관객들의 심리적 긴장을 자연스럽게 이완시켜주었다. 따라서 순수 공연 시간만 120분이 넘었지만 결코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확실히 규모가 큰 공연이든 소극장 용 소품이든, 공연은 현장에서 관람해야 재미도 있고 감동도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넓은 무대 위에서 다수의 배우들이 정확한 동선을 지키며 저마다의 연기를 동시적으로 하고 있을 때, 만약 이것을 촬영된 영상으로 보게 되었다면 분명 놓치고 넘어갔을 장면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주된 서사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무대 한복판에서 애틋한 연기를 펼치고 있을 때, 잘 보이지 않는 구석이나 저 먼 뒤편에서도 또 다른 배우들은 각각의 연기를 하고 있었다현장에서 (총체적으로 조망하듯) 보지 않았다면 자칫 놓치고 넘어갔을 장면들이다. 그래서 거금의 입장료를 주고 극장을 찾는 것이겠지. 뭐랄까. 관극이나 관람의 질적 차이를 경험한 관객들은 그 비용이 결코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의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깊고 넓은 감동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겠지


아무튼 후배 덕분에 좋은 공연을 보고 왔다. 올 가을 가장 신선하고 아름다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직 가을의 시간은 진행 중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