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강퍅한 시대 속, 시인으로 살아가기

달빛사랑 2019. 10. 4. 23:30

선배 우수홍 형과 후배 이상훈을 만났다. 후배 이는 최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사업에 대해 우리에게 브리핑을 했는데, 사실 나에게는 낯선 사업이었기 때문에 들어도 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우 선배도 실상은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나와는 달리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 그래서 우리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뭔데?”라고 물었고, 후배는 본심을 들켜 겸연쩍은 듯 형은 본 지 오래 됐잖아. 그래서 얼굴 보고 싶어서 연락한 거고, 수홍 형에게는 사업에 관심을 갖고 취재해달라는 부탁 좀 하려고요.”라고 했다.

 

일단 내 관점에서는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수홍 형.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줘요.”라고 후배의 말을 거들긴 했지만, 말을 하면서 나는 문득 못된 습관이 다시 도졌군.’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격조했던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순수하게 반가워하지 못하고 또 뭔가 부탁을 하려는 모양이군.’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상대방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전화 건 사람의 의도를 함부로 재단하려 하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이란 말인가. 

 

설사 부탁할 무엇인가가 있어서 전화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 말(부탁)을 하기 위해 상대방은 얼마나 많은 쑥스러움과 모멸과 군색(窘塞)한 자신을 견뎌야 하는가를 헤아렸더라면 그리 불퉁스러운 마음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과거에 허다한 지인들에게 곤란한 부탁을 많이 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모멸과 군색함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外傷)이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주기보다는 오히려 타인에 대한 의심과 부담감으로 치환되어 나타나다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도와주면 될 것이고 능력 밖의 부탁이었다면 거절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하며 위로와 공감의 말을 해주면 되는 건데,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시대가 강퍅하다고 해서 시인의 마음마저 강퍅해져서야 되겠는가. 깊이 생각하며 살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