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우리 염치 좀 챙깁시다
최근 문화재단 내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는군요. 남자 직원 하나가 근무 중에 야한 동영상을 보았고 그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 동료 여직원이 신고를 한 것입니다. 재단 측에서는 사건이 신고 된 순간부터 매뉴얼을 참고하여 매우 기민하게 대응을 했다고 합니다. 외부 인물이 포함된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가해 혐의자와 피해자 모두의 의견을 청취하였으며, 특히 피해 여성들에게 2차 가해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많은 배려를 했다는군요. 그렇다면 일단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려보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인천에서 성명서 정치를 좋아하는 일군의 세력들이 피해여성은 물론 아직 범죄행위가 확증되지 않은 가해혐의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명서를 작성해 연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이 친구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성범죄 매뉴얼을 알기나 하는지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이들의 행위야말로 2차 가해의 전형입니다. 이들의 행위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월권과 오버액션이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단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소아병들이지요. 그들은 원인 분석이나 재발방지와 같은 근본적인 대책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재단과 재단 내 일부 임원들을 망신 주는 게 궁극의 목표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대단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유치한 ‘완장’들 같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인천, 문화, 예술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삽니다. 같은 지역에서 해당 단어를 자주 언급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창피해 미치겠습니다. 그들은 팩트를 매우 강조합니다만 정작 자신들은 정확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추측성 글을 자주 쓰거나 ‘아님 말고 식’의 고발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인천에는 팩트라고 강조되는 정보들조차 이해관계에 따라 굴절되거나 자신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만 접수한 후 그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흐름들이 조성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부터도 성명서 한 장을 쓰기 위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전인수적 표현이나 상대에 대한 감정적 비난의 문장을 걸러내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성명서나 선언문을 쓰게 될 경우 항상 ‘이 글을 쓰는 나만이 옳다’가 아니라 ‘해당 사안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하지만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란 입장을 견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염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염치가, 부끄러움을 아는 최소한의 마음이 저들에게는 암만 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제발, 부디, 반드시, 기필코 나의 착각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