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분노의 심리학

달빛사랑 2019. 6. 15. 22:00

확실히 난 큰 그릇은 고사하고 단단한 그릇도 못 되는 것 같다. 최근 들어 내 그릇의 용적과 강도를 생각하지 않은 채 공적 조직의 이사라는, 영양가 없는 직함 때문에 냄새나고 징그러운 것들까지도 그릇 안에 품어보겠다는 야무진 시도를 해봤는데 역시나 어렵다. 그리고 그 어렵다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나는 아주 유치해지고 만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생경한 모습으로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너희가 진정 인천 문화와 예술을 아느냐? ?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나는 아는 체 안 하잖아. 좀 정직해져 봐. ? 인천을 사랑하고 문화와 예술을 (너희 식의 표현으로) ‘애정한다고? 웃기고 있네. 다 이해관계 속에서 고민하는 척 하는 거 아니야? 딱 까놓고 일단 너희들은 너희가 한결같이 미워하고 비판해 온 조직에서 돈을 지원받아() ()잖아. 심지어는 그 한결같이 미워하고 비판해 온 조직에서 받은 사업에 자기 가족까지 사업자로 등록시켜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잖아. 그러면서 맨날 불평불만. 그러면 인천 문화예술판은 맨날 너, 혹은 너 같은 문화건달이나 정치적 투덜이들에게 맞춰줘야 하냐? 너희들, 세금에 부끄럽지 않은 예술이나 실천 해봤어?”와 같은 비판은 얼마나 감정적인가?

 

이러한 비판(의 탈을 쓴 비난)은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통해 뭔가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치킨게임 같은, 이를테면 살의마저 느껴지는 공격성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공격은 나 스스로를 공허하게 만들 뿐 사태의 해결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순간에 느껴지는 1차원적 통쾌함은 있을지언정. 하여 좀 더 정치(精緻)해져 하겠다. 비판이나 논쟁에도 품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 깊어지고 세련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자. 생각이 많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