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도 설치하고 엄마를 웃게 하고
에어컨 기사들은 점심때쯤 도착했습니다. 현장 일을 하는 분들에 대한 선입관은 없지만 두 분 기사님들의 인상은 참 괜찮아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인상과 작업 결과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믿음이 갔다는 말이지요. 인상처럼 일처리도 깔끔했습니다. 설치비용은 십만 원, 아주 싸지도 바가지도 아닌, 적정한 금액이었습니다. 삼성서비스센터에서 왔으면 벽을 천공했으니 약 만 원 정도 더 받았을 겁니다. 물론 해당 제품의 본사 서비스는 신뢰가 가긴 하지요. 하지만 이분들도 내가 아는 지인이 소개해줬고 설치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명함을 내밀며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하라고 하는 걸 보면 끝까지 책임을 져주겠다는 말 아니겠어요. 기꺼운 마음으로 설치비를 지불했습니다. 뒤처리가 영 마땅찮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 같은 마음으로 여름을 기다려 봅니다.
저녁에는 혹시 조구 형이나 혁재가 있을까 궁금해서 주점 갈매기에 나갔습니다. 형도 없고 혁재도 없더군요. 두어 시간 앉아 있어도 나타나지 않기에 막걸리 두 병을 마시고 일찍 일어나 돌아왔습니다. 공기는 양호했다가 바람이 불자 오히려 나쁘게 변했고 옅은 안개가 온 도시를 뒤덮고 있던 참으로 희한한 날씨였습니다. 취하지도 않은 채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어머니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운 술친구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한 사람을 웃게 했으니 오늘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낸 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봄날은 가고 나는 또 사소한 것에 만족하며 하루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