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회의 시들보다 훨씬 반가웠던 봄비
오랜만에 인천작가회의 시합평회에 참석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모임은 진지했다. 다만 나는 자기 세계가 분명하게 조형되어 있는 시인들의 작품을 돌려보며 “이렇게 표현을 바꿔라”, “행과 연을 다시 나눴으면 좋겠다” 등과 같이 시의 기교와 형식에 대해 언급하는 합평회는 거부감이 든다. 비평 모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들의 시에서조차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타인의 시에서 ‘억지로’ 찾아내어 신랄하게 지적하는 합평회는 마조히즘이나 사디즘을 인정하지 않는 다음에야 견디기 힘든 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시를 쓸 당시의 심정과 쓰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지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인에게 들어보고 독자(입장의 시인들은)는 그 시를 읽고 느낀 감상과 해당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그런 형식의 합평회라면 좋겠다. 주제에 대한 해석은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에 깊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지 않겠는가. 문청 시절의 습작기 시인들에게는 형식적인 것도 중요하겠지만 적어도 수십 년 시를 써온 사람들에게 쇄말적인 형식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말이다. 오늘 다섯 편의 시를 만났는데, 한 편은 젊은 시인의 작품이라서 그런가 미래파 시인의 시처럼 무척 난해해서 무슨 의미인지 독해가 어려웠고 두 편은 수월하게 읽혔고 내용도 좋았다. 시 속에서 시인의 고민도 읽을 수 있었다. 나머지 두 편은 언어의 경제성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수필인지 시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시들보다 오늘 비가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려준 것이 나에게는 훨씬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