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후배 시인의 시집을 받다-나희덕, <파일명 서정시>(창비)
달빛사랑
2018. 12. 7. 12:19
오래 전에 배달되어 온 후배의 시집을 소청도에 다녀오느라고 잊고 있다가 섬을 나와서는 또 송년회다 자서전 작업이다 정신없어서 뜯어 놓기만 하고 한 동안 읽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제서야 비로소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그 동안 후배는 생명의 소중함이나 자연과의 동화 그리고 삶의 소박한 아름다움에 대해 담담하게 기술하는 시를 써왔는데, 이번에 받은 시 <파일명 서정시>는 분위기가 무척 달라져 있었다. 그 변화의 폭이 너무 가팔라 낯설기까지 했다. 무엇이 후배로 하여금 ‘담담함 아름다움’의 세계로부터 이탈하여 ‘거칠고 투박하고 생경하기까지 한 어둠’의 세계로 나오게 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도 그녀가 겪은 몇몇 신산한 삶의 경험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지난 시집과 이번 시집 사이의 간극은 너무도 크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부정적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너무 안온한 세계에 머물며 훈계조의 시를 쓰는 것 같아 못마땅했던 적이 많았다. 그녀의 녹록치 않은 삶을 부드러운 문장으로 위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만이었던 것이다. 이번 시집은 그러한 저간의 문제제기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변화를 품고 있는 낯설면서 반가운 시집이었다. 그녀는 이번 시집을 통해서 어둠과 세계의 물질성, 그리고 그것들의 그로테스크한 사랑 방식에 대해서도 천착함으로써 그녀의 시 세계를 한층 깊고 넓게 만들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후배의 건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