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생일, 첫눈 내리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첫눈입니다. 늘 밤사이에 도둑처럼 내리거나 비와 함께 내려서 볼품없던 예전의 첫눈과는 달랐습니다. 눈발은 그렇게 맹렬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겁니다.
생일 맞은 후배에게 케이크와 책 『당시(唐詩)』(민음사)를 선물로 보내줬습니다. 꽃도 보낼까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주문할 때 천 원을 더 주고 ‘빨강머리 앤’이 그려진 선물 포장지를 골랐습니다. “내년에는 ‘운유당’ 지붕을 초록색으로 바꿀래요.”라고 말하며 후배는 웃었습니다. “그 초록지붕을 꼭 보고 싶어.” 나는 더 크게 웃었습니다. 글과 그림말들만 오고가는 말풍선 안이었지만 내 웃음소리를 후배는 분명 들었을 겁니다. 첫눈 내렸으니 이제 명실상부 겨울입니다.
눈의 무게
빽빽이 둘러친 잡목림 사이로 해가 든다
마당에 쌓인 잔설은
대지에 박음질한 듯 녹을 기세를 안 보이고
난간 위에 바투 선 고양이들은
공중에 떠다니는 양광의 미립자들이
시속 몇 킬로미터 속도로
자신의 눈조리개 속으로 파고들지를
찬찬히 주시하고 있는 듯하다
겨울의 심처에는
유리로 된 성채가 있어
고양이 눈 속의 잔설 한 움큼을 움켜쥐면
피가 흐르겠다, 파편처럼 찔러오는 통증이 있겠다
얼어붙은 잔설 위에는
드문드문 발 없는 새의 깃털
눈물로 변해서 흘러 다니는 새들의 발자국
눈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는
교목의 가지들이
제 그림자에 닿아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바람 소리 세차다 적막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김명리 시인의 시집『제비꽃 꽃잎 속』(2016)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