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그리고 '인천풍물명인전' <산이>를 관람하다
쉰여섯 번째 생일은 조촐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었고, 멀리 천안에서 횬이가 케이크를 보내주었으며 sns를 통해 많은 지인들의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각각의 표현 속에 담긴 각각의 마음들, 살면서 갚아야 할 마음이 빚이 많다. 무엇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미역국은 물론 호박전, 계란찜, 고구마 줄거리 무침, 파래무침 등 각종 반찬을 만들어서 아들의 밥상을 차려주신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물 난다. 이 더운 날 나를 낳으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심하셨을까. 난 어머니가 몸이 편찮으시다고 하면 걱정도 물론 컸지만 한편으로 귀찮은 마음이 불뚝거렸던 적이 여러 번이다. 어머니는 한없이 은혜로운 존재시지만 가끔은 자식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도록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루종일 횬이가 보내준 케이크를 먹으며 교정을 봤다. 이제 시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한 시간 정도만 교정지를 보고 있으면 눈이 침침해서 견딜 수 없다. 돋보기를 써도 침침한 건 마찬가지다. 게다가 파일로 보내준 교정지는 컴퓨터 화면의 크기만큼 키울 수가 있어서 보기가 편한데 종이 교정지는 글씨가 작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전쟁 통에 고향을 떠난 실향민 총18 명의 인터뷰 기사였는데 서너 시간 동안 9편밖에 끝내질 못했다. 저녁에는 인천지역 풍물패들이 한바탕 신명을 풀어놓는 <산이> 공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은 흥겨웠다. 기예의 숙달 정도와는 무관하게 풍물은 흥겨운 법이니까. 20대 어린 <산이>부터 70대 명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라인업을 구성해 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했다. 무대 위를 방방 날아다니는 젊은 명인과 가끔 다리가 휘청하고 숨을 몰아쉬는 70대의 명인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연의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오랜만에 원없이 몸을 흔들고 박수를 치고 추임새를 넣어봤던 시간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에 갈매기에 들렀더니 혁재와 광석이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가 많이 취해 있어서 일찍 왔다. 오는 취하면 자꾸 말싸움을 걸어온다. 나의 반면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