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하는 법이다
밀린 원고를 쓰다 말고 갈매기를 찾았다. 다인아트 윤과의 약속 때문에 간 것인데,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지인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윤은 도착 전이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미 낮술로 대취한 채 후배들과 술 마시던 이 모 선배와의 부딪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윤이 근처 다른 술집에서 지인과 있겠다고 나에게 전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잠시 후에 문자가 도착했다. 이 모 선배가 자리를 뜨면 연락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 선배는 이후로도 한참을 더 있다가 후배들에게 업혀서 나갔고 나는 건너편 후배들의 술자리에 합석해서 윤에게 ‘이제는 와도 된다’고 문자를 띄웠다. 30분 정도 지나서 윤과 나 모 선배가 함께 도착했는데 그때는 이미 내가 술이 많이 취해 있어서 정작 윤과는 대화를 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돌아오면서 마음이 찜찜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윤을 기다리는 동안 합석했던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과도하게 행동을 한 것 같아서였다. 술에 취해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를 건 사실을 술이 깨고 난 다음 날 확인했을 때처럼 불안함과 왠지 모를 모멸이 술을 싹 깨도록 만들었다. 논쟁도 아니고 그렇다고 훈계도 아닌, 오로지 냉소와 과언만이 난무했던 자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건 내 오랜 병통이다. 술로 인한 설화(舌禍)나 활극 상황의 연출은 제법 연조(年條)가 깊은 주사다. 이튿날 술이 깬 후 도리질하며 머리를 쥐어뜯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동안 잠잠했는데, 요즘 뭔가 일에 쫓기다 보니 강박을 느껴서 그랬던 것일까, 이전 버릇이 나온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왔다. 맘이 무겁다. 하지만 일단 자자. 잠들 때까지 술자리의 시간을 분 단위로 분절하여 복기해 보면서……. 윤이 제시간에만 와주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다. 이 모 선배가 술 취한 채 그 시간에 갈매기에 있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디 맘먹은 대로 흘러가던가. 내가 저질러 놓은 일에 문제가 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자. 오늘은 마치 나를 제외한 모든 인물과 상황들이 일제히 작당을 해서 나를 곤혹스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 같은 황망함과 짜증스러움 뿐이다. 주여, 나를 보살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