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센터를 다녀와서
대한민국은 실업공화국. 아침부터 고용센터에는 실업급여를 신청하거나 일자리를 얻기 위한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눈빛이 마주칠 때는 이유 없는 머쓱함이 매번 느껴졌다. 이 휘황한 자본의 세상에서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은 루저의 삶으로 전락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스무 살 이후 회사나 개인에게 고용된 삶을 살며 노동을 팔아본 적이 그리 많지 않다. 사회운동을 하며 조직에 소속된 적은 있지만 그것은 결코 임노동 관계가 아니었다. 나중에 학원을 운영하며 돈을 벌어보기도 했고, 문화센터나 고등학교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한 적도 있지만 그것 역시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인의 삶은 아니었다. 그러니 공감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실업의 문제는 개인의 불성실이나 게으름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연동되어 있는 것이므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해서 스스로를 루저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들의 자격지심조차 어쩌면 자본이 그들에게 강제해 온,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일 지도 모른다. 서글프지만 자본의 속성은 그런 것이니까. 모든 것을 환금성으로 타산하는, 집요하고 잔인하며 끝없이 자신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괴물 시스템. 실업자들은 그 시스템의 피해자들일 뿐이다. 적어도 센터에 나와 적극적인 취업 의지를 가지고 번호표를 뽑은 채 담당창구 앞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라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렇다고 본다. 그들 모두 자신에게 맞는 행복한 일자리를 찾아서 다시 일하는 기쁨을 맞보며 살게 되길 바란다.
세상에는 얼마나 파렴치한 지식인이 많은가. 우리 사회를 좀 먹고 있는 가장 심각한 적폐가 바로 법원조직이다. 안하무인의 이 이기적 권력집단을 환골탈태시키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감시와 견제도 받지 않는 선민 조직, 이들의 폐해는 결코 예사롭지 않다. 양승태 대법관과 그 주구들의 행태는 결코 박근혜와 최순실의 행태보다 덜 할 게 없다. 이들을 단죄하고 새롭게 사법부를 바로세우는 일은 한국민주주의 발전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다시금 이 법원권력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전횡을 용인할 경우 우리에게 바람직한 사회는 토성에 도착하는 일만큼이나 요원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