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님, 그건 그냥 민폐일 뿐이랍니다
종우 형에게 부탁받은 신발을 전해줄 겸, 인미협 주최 토론회 결과도 들을 겸 해서 다시 또 저녁나절 갈매기를 찾았는데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모두들 전작이 많았는지 불콰한 얼굴들이었고, 몇몇은 지나치게 심각한 얼굴로 민폐를 양산 중이어서 술맛이 떨어졌다. 어제 많이 마신 탓에 컨디션도 물론 좋지 않았다. 괜히 나왔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특히 출판사 대표인 후배는 얼마 전 제주도에서 초대전을 한 모 교수를 민예총에서 도무지 챙기지 않는다며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의리를 강조하는 발언이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그저 주사였다. 엊그제는 그녀의 남편이 똑 같은 주장을 하며 술판을 시끄럽게 하고 기분을 잡쳐놨는데 오늘은 그의 아내인 후배까지 그러고 있어서 부창부수가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들 부부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그들의 발언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의견을 개진하는 방법이 그토록 막무가내라고 한다면 누가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겠는가. 결국 재미도 없고, 컨디션도 안 좋아 아무도 모르게 슬쩍 빠져나왔다.
그나저나 나는 사실 제주도에서 현재 전시회를 열고 있다는 그분을 잘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까지 각별하게 챙길 만큼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냥 지역의 선배로서는 존경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절기마다 잊지 않고 찾아가 문안인사를 할 만큼의 인간관계가 만들어진 건 아니다. 존경을 강요하는 것 만큼 불편한 일이 또 있을까. 돌아오는 길, 확실히 밤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입추가 다음 주 화요일이라는데, 그러고 보면 자연의 시계는 참으로 빈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