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좀 달라집시다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와 인천민예총 소속 문계봉입니다. 그간 지역 일정과 개인적 사정 때문에 각급 회의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토론방’에 올라오는 다소 주관적으로 윤색되거나 감정적으로 제기된 이야기들은 비교적 꼼꼼하게 읽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받은 제 느낌은 답답함과 절망감 그 자체였습니다.
현재 불거진 여러 가지 갈등(이라기보다는 반목에 가까운 모습들)은 해당 주체들의, 발언의 진정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상당히 소모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름만 들었고 직접 만나본 적 없는 현 이사장님의 소통방식이나, 사태 해결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나 노력을 보이지 못한 채 묵은 관례들 뒤에 숨어 일정하게 직무를 유기(능력이 없는 것이라기보다는 의지의 부족이라 생각해서 유기라는 표현을 썼다)하고 있는 형국인 사무총장이나, 현재의 갈등을 조정, 봉합,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김종선 동지의 글도 그러한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고육지책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모두, 말로는 민예총의 발전과 정상화를 운운하고 있지만 그 발전과 정상화를 가로막아왔던 고질적 병폐, 예를 들어 동지적 애정이나 연대감이 사상된 생경하고도 인격모독적인 문제제기라든가 상대의 의견을 희화화하기, (의도적으로 그런 건지 미숙해선 그런 건지 모를) 논점일탈, 상대가 제기한 문제의 합리적 핵심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적으로 왜곡하거나 면박주기, 상대의 실수를 침소봉대하여 과장하기 등등이 천연덕스럽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수정치판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이 예술가 조직 안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하지만 동지적 믿음과 당시의 현실적 상황 속에서 일정하게 묵인된 관행들을,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해당 시기의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늘의 시점에서 뭉뚱그려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어찌되었든 조직적 결정으로 각급 회의에서 승인되거나 (원칙과의 부합성 여부에 대한) 게으른 성찰의 결과로 이루어진 우리 조직 모두의 아픔이거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상당수의 지역민예총과 회원들의 암묵적 동조 속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관행’들은 특정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 해결을 위해서는 전조직적으로 치열한 반성과 사심 없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현재 민예총 내에서 벌어지는 치킨게임 같은 논쟁(이라기보다는 감정적 대립의 혐의가 짙은)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것이 창립 30여 년이 된 성년조직의 논의 수준인 것인지, 이것이 상상의 해방과 민주주의 정신을 자기 예술표현의 기반으로 삼는 진보적 예술가 조직의 문제제기 방식인지를 말입니다. 조급한 성과주의나 소아병적 영웅주의는 물론, 변화의 본질을 검증해보지도 않은 채 다가올 것들에 대해 회의하는 변형된 형태의 청산주의 역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치명적인 독소들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아픈 역사도 극복의 과제이지만, 역시 생생한 우리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냉정하게 확인하면서 이번 기회에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예술가 조직의 자존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존해야 할 합리적 핵심과 폐기해야 할 오류들을 명확하게 변별할 수 있는 조직적 혜안을 기대해 봅니다. 자기반성에 게으르고, 동지에 대한 배려를 상실한 조직은 희망이 없는, 죽은 조직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