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집
바람의 집
언 땅에 너를 묻고
귀로에 버스째 들른 곳
생시에 너 살던 동네
비닐하우스 지천
바람은 마른 풀 불어 날리고
몇 가닥 흐린 햇빛으로 우리는
너의 집을 멀리 돌았다
담이 없었던 삶
밭 한복판
온몸이 바람막이였던 세월
옷깃 여미며
눈길은 자꾸만 빗나가
구름 언저리 더듬을 때
갑자기 한밤 펄럭대던
문풍지 소리라도 들리는 듯했다
두런두런 밤새우던 날이 엊그제 건만
갑자기 너는 죽고
말수가 적어진 우리는 일없이
집 주위를 서성거렸다
이제 이 집 떠나면
우리도 오래도록 너처럼
돌아올 수 없으리
죽음은 간명하다
저만치 등마루 꺾으며
성큼 덮쳐 오는 산 그림자
―원재길, 『나는 걷는다 물먹은 대지 위를』, 민음사(2004), 24쪽
재길 형을 만나서 확인해 봐야 확실하겠지만, 문득 형의 이 시를 보는 순간, 이건 분명 절친이었던 기형도 형의 죽음을 소재로 한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 속에 나타난 ‘밭 한복판의 집’의 이미지도 그렇고 제목인 ‘바람의 집’도 그렇다. 이 모두가 (형도 형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형도 형을 떠올리게 만드는 익숙한 이미지이자 표현이기 때문이다. 형도 형이 청소년기를 보냈던 집은 밭 한복판에 오도카니 서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형도 형 역시 ‘겨울판화’라는 부제가 달린 ‘바람의 집’이라는 시를 썼다. 성석제 선배를 비롯해 원재길, 기형도 등 79학번 선배들은 유난히 친하게 지내던 동기들이었다. 형도 형의 갑작스런 죽음은 아마도 석제 형이나 재길 형에게는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이 시는 분명 죽은 형도 형을 그리워 하며 그를 조상하는 시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