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길병원 일반병동 6층 15호에 들다
어머니는 오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본관 6층 일반병동 15호실에 들었다. 중환자실을 나올 때만 하더라도 왜 집으로 가지 않느냐며 역정을 내시던 어머니는 일반병동에 들어 짐을 풀자 그때서야 안심했다. “여기는 천국 같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중환자실이 어지간히도 을씨년스러웠던 모양이었다. 하긴 눈에 들어오는 환자마다 의식이 없거나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을 텐데, 그러한 환자를 하루 종일 봐야 하는 것은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전에는 한국민예총 총회자리로 전달될 시집 50권을 퀵서비스로 받아 일일이 사인을 했다. 지난 1월에 있었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총장과 선배들이 미안한 마음에 대량 구입을 해서 총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에게 전달해줄 모양이었다. 착불 처리된 퀵 서비스 비용까지 입금을 해주는 센스, 살짝 감동. 사인을 마치고 25권씩 포장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 누나로부터 병실이 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연신 수다쟁이 모드가 되어 얽히고설킨 기억들을 제수씨와 누나 앞에서 풀어놓고 계셨다. 처음 응급실에 실려 가고 이후 곧바로 중환자실로 올라간 기억을 어머니는 전혀 하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본인이 스스로 병원을 찾아와 입원한 것이라는 왜곡된 기억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평소 무의식 속에 저장된 의식과 사람에 대한 감정이 마구 뒤엉킨 채 표출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나와 제수씨가 돌아가고 잠시 후 동생이 도착했다. 나는 밤을 새야 해서 먼저 집으로 와 밥을 먹고 준비물을 챙겨둔 후 잠깐 잠을 잤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6시 30분. 동생은 돌아가고 나와 엄마, 둘만의 밤샘이 시작되었다. 4인용 병실은 생각보다 무척 더웠고 어머니보다 훨씬 위중해 보이는 두 명의 환자가 있었다.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고 어머니도 좀처럼 잠들지 못하셨다. 어두운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시는 어머니는 9시만 넘으면 소등해 버리는 병실의 어둠이 무척 부담스러웠을 게 틀림없다. 나는 지하 편의점으로 내려가 컵라면 하나를 사다놓고 책을 펴들었다. 소등한 병실은 책을 읽기에 조도가 너무 낮았다. 밤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