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당신의 안부를 묻다-운유당 서신
하루의 저물녘, 당신을 생각합니다. 지는 해는 아직도 강강한 편입니다. 예사롭지 않은 여름의 몽니 속에서 새삼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안녕하신지요. 엊그제, 일이 있어 찾은 타지(他地)의 시골길을 걷다가 패고 있는 벼이삭들을 보았습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볕의 바늘에 찔리고, 불친절한 비바람을 견뎌낸 대견한 무게감들이 같은 방향으로 일제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집중을 통해 안으로 단단하게 응결되어 갈 자신들의 자세를 생각하면서, 벼이삭들은 침묵으로 낯선 타지인의 시선을 견디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길 위에서, 헝클어진 옷매무새로 길 위에 버티고 선 여름의 옷자락을 밟으며 숙소로 돌아오던 바로 그 길 위에서, 나는 또 당신을 닮은 꽃 한 송이 만났습니다. 막 기지개를 켜며 이슬을 말리던 그 꽃과 눈이 맞았을 때, 문득 당신의 안부가 궁금해지더군요. 그때 나는, 만약 당신과 내가 저 공평한 시간 앞에서 약간은 수줍게 묵은 계절의 옷을 벗고, 새롭게 마주할 계절 속에서 서로의 옷매무새를 참견하고 당연한 안부도 서둘러 묻는, 신파 같은 요란함 속에 있게 된다면, 우린 바뀐 계절 속에서 조금은 더 아름다워 질 수도 있을 거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닮은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나의 아침 산책은 생각보다 길어졌지요.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나는 당신의 당연한 안부를 이렇듯 또 묻습니다. 안녕하신지요. 저도 보다시피 안녕합니다. 계절의 교차로에는 여전히 당신을 닮은 꽃들이 지천입니다. 내 그리움 역시 그 꽃들과 함께 오롯할 겁니다. 보세요. 당신과 나의 여름이 가고 있어요. 가을이 오고 있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