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선배들-조구, 원학운, 박귀현, 송경평, 이우재
늘 가는 술집에서 늘 만나는 조구 형과 막거리를 마셨습니다. 조구 형은 오늘도 역시 백련막걸리를 선택했습니다. 아마도 형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리에서 일어섰을 겁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형은 하루 작업을 마친 후 오후에 '주점 갈매기'에 들러 막걸리를 두 병쯤 마신 후 본격적으로 손님들이 술집에 들어찰 시간이면 자리에서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를 만나면 형님의 술자리는 길어집니다. 배고프지 않으면서도 배고파죽겠다며 안주를 시킵니다. 그것은 나에게 안주를 시켜주고 싶어서 괜스레 하는 거짓말이지요. 나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짠해지곤 합니다. 무엇보다 두 다리가 모두 불편하신 형은 목발이 없으면 전혀 움직일 수 없으십니다. 그래서 찬바람이 불거나 눈 내리는 날이면 나는 형의 귀가가 걱정이 되어 자꾸만 마음이 불안해지곤 하는데, 그런 날조차 형은 결코 남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질 않습니다. 한 번 두 번 의지하다 보면 어느 순간 편해지고 싶은 마음이 찾아든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런 형의 모습을 볼 때면 한편으로 의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무척이나 안쓰럽습니다.
형이 가족들의 전화를 받고 귀가한 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일군의 선배들이 들어왔습니다.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원학운 대표님과 송경평 선배, 온고재 대표 이우재 선배, 그리고 제 고등학교 선배이자 오랜 지인인 박귀현 선배가 그들입니다. 겨울밤, 그분들과 다시 술판을 이어가게 되었지요. 원학운 선배와 송경평 선배께서는 얼마 전에 있었던 제 시집출판기념회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그 자리에서 현금 오만 원씩을 주셨습니다. 다행히 갈매기 대표인 이종우 선배께서 시집을 10권 구입해 놓고 있으셨기 때문에 그 두분께 시집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우재 선배는 얼마 전 자신의 수강생들에게 주겠다며 시집 50권을 구입해 주셨지요. 박귀현 선배는, 시인에게 술이 떨어지면 안 된다시며 술값 20만 원을 선결제 해주셨습니다. 술마시고 싶을 때 술값 걱정하지 말고 마시라는 말과 함께.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뭐라고 이렇듯 많은 선배들이 애틋하게 챙겨주시는 건지,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많습니다. 어쨌든 술집 밖에서는 살을 에이는 듯한 맵찬 겨울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어댔지만 술집 안의 정경은 군고구마처럼 따뜻한 그런 것이었습니다. 아, 정말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