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모두들 고맙습니다. 제가 뭐라고.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수상 소감을 할 때, 왜 그렇게 멋대가리 없이 고마운 사람들만 줄줄이 나열하나 했는데, 제가 막상 이 자리에 서 보니까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암튼 이 지역은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려있는 동네인데, 치기만만하게 사춘기 시절을 보내던 이 신포동에서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후, 시인으로서 출판기념회를 하게 되어 무엇보다 기쁩니다. 일명 나와바리잖아요.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주변의 상황이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줬던 같습니다. 유년기를 보냈던 서구의 분위기는 막 마을 어귀에는 신작로가 뚫리고 마을 안쪽에는 상여가 나가고 품앗이가 일반화되어 있던 전형적인 전원이었습니다. 산에 올라가 칡뿌리를 캐먹고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던 토마토 등을 서리해 먹던 그야말로 수렵채집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다 중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집에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다녔지요. 인천을 종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그야말로 화양연화였지요. 학교 담만 넘어가면 인천바다와 항구가 보이는 자유공원이 있었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차이나타운이 있었고, 교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은밀한 방에 불러들여 기꺼이 술을 내주시던 넘치는 동정심과 사랑으로 똘똘 뭉쳐진 시장의 아주머니들이 계셨고, 무엇보다 인성, 인일, 인천여고 등 여학교가 부채꼴 모양으로 포진해 있었으니 사춘기 소년의 가슴을 격동시키기에는 안성맞춤이었지요. 이런 분위기에서 건조하게 공부만하고 지낼 수는 없잖겠습니까? 그러다 대학을 가고, 시대의 격랑 속에 몸을 맡기게 되었지요. 물론 문학에 대한 꿈만은 포기하지 않았지요. 기형도, 성석제, 나희덕, 그리고 여기 계신 김응교 선배 등 훌륭한 문우들을 만났던 건 정말 제게는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족적인 문학을 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그악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 문학을 유예해 둘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오늘 참석해주신 여러분들의 면면은 제가 그 동안 걸어왔던 삶의 이력을 대변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앞으로 좀 더 단단하고 감동적인 시를 쓰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인천 이야기를 많이 써볼 생각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독자로서 친구로서 많은 조언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간단한 음식을 준비했는데, 단언컨대 그 어느 뷔페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음식들이 서너 가지 있을 겁니다. 이 모든 음식을 준비해 주신 오혁재 군을 비롯한 후배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부디 그냥 가지 마시고 준비한 음식을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참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살면서 좋은 글과 치열한 삶으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