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여, 나를 용서하지 말라
하루 종일 익숙한 시인들의 작품을 찾아 읽었다. 실망과 질투가 반반이었다. 작품의 질에 비해 과도하게 평가된 시인도 있었고, 반대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시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나보다는 부지런하게 시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 동안 너무도 시에 대해 게을렀다. 그게 어쩌면 능력일 수 있겠지만, 도대체 내 삶, 그리고 정신의 대부분을 지배한 것은 무엇이었단 말인지. 시 앞에 절망해 본 적은 아직 없지만 타성은 분명 내 상상력과 시에 대한 책무를 훼손할 게 분명하다. 나와 비슷한 삶을 꾸려가는 허다한 시인들은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도 보석 같은 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삶과 시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그들이 훨씬 치열했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시인의 능력은 말 다루는 재주가 아니라 삶에 대한 치열함과 진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그런 점에서 나는 치열하지도 못했고 진정성도 결여되어 있던 것이 분명하다. 좋은 시들을 찾아 읽으며 문학적 자극을 받거나 정신의 자양을 확보하려 했는데 글러 버렸다. 오히려 마음만 복잡해졌다. 시여 부디 나를 용서하지 말라.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오전, 찾아뵙겠다는 후배의 연락을 받았으나 아직 소식이 없다. 의례적인 말이었을까. 깨진 약속과 버려진 말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도시의 겨울, 문득 모든 말들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오늘 밤에는 그 낯설어진 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밀린 하소연을 해봐야겠다. 행여 순하고 여린말들이 언 손을 호호 불며 나를 위로하고 그 위로 속에서 이번에는 내가 위로의 말을 찾아내어 낯설어진 말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겨울은 마음을 줘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내 마음도 그만큼 넉넉해지는 계절이다. 위로가 필요한 모든 것들이 오히려 나를 깊고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