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동구노인복지관 솔향기글쓰기대회 심사

달빛사랑 2017. 11. 23. 22:00

노인문화원의 글쓰기 심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문장력이나 창의적인 표현은 눈에 띄지 않지만 몇몇 글들 중에서 가슴을 울리는 내용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연령층이 20대에서 70대까지 폭이 넓지만 가슴을 울리는 글들은 대부분 노년층의 글들이다. 그들이 살아오면서 느낀 삶의 비애와 신산(辛酸)들은 정제되지 않은 문장 속에서도 오롯하게 드러나 읽은 이로 하여금 눈물을 글썽이게 한다. 할머니들은 자신의 화양연화 시절로 동무들과 더불어 나물 캐러 다니거나 함께 놀러 다니던 15세 전후, 즉 결혼 전 소녀 시절을 떠올리는 데 반해 할아버지들은 막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았을 때라고 회고한다. 확실히 가부장제 사회를 살아오신 어르신들에게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결혼을 바라보는 온도 차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얼굴도 모르는 남편을 만나 떠밀리다시피 시작한 고된 결혼생활이 할머니들에게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슬픔과 고통의 시간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각종 시니어 글쓰기 프로그램들은 노인들에게 많은 부분에서 삶의 활기를 주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떤 할머니는 가슴의 화병이 치유되기도 했고, 또 어떤 할아버지는 협심증과 불면이 사라졌다고 문화원 강사님들에게 털어놓으셨다고 하는데,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평생의 한을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일 자체만으로도 그분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자신들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해줄 사람이 주변에 없어 늘 스스로 안으로만 삭이던 한들을 또래들 앞에서 토로했을 때, 어떤 이는 공감해 주고, 또 어떤 이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주니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그 이야기들은 부모에게도, 남편과 자식에게도 결코 털어놓을 수 없었던 한수런 이야기들이었으니 말이다. 노인들은 외로움을 힘겨워 한다. 외로움 속에 노인들이 방치되었을 때 그분들은 급격히 쇠약해지고 심한 경우는 치매가 찾아들기도 하는 법이다. 어머니의 경우도 긴 시간 동안 빈집에 홀로 계시면서 심한 외로움을 겪으셨을 게 분명하다. 그 극단의 외로움 속에서 홀로 견디셨을 어머니의 수많은 시간들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

 

심사가 끝나고 문화원 근처 꼬치 집에서 간단하게 소주 한 잔을 하며 심사에 대한 대화를 나눈 후 구월동으로 넘어올 때,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시청역에서 갈매기에 전화를 했더니 혁재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갈매기에 들러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덤으로 병균 커플과 조구 형 내외도 볼 수 있었다. 눈은 상당히 맹렬하게 내렸다. 오늘처럼 맹렬한 눈발을 만난 건 올 겨울 들어 처음이니 내게는 오늘이 '첫눈'인 셈이다. 이전에는 첫눈과 관련한 이러저러한 감상이 눈송이처럼 많았으나 이제 그 모든 것들은 아득해지고 청승만 남았다. 생일 맞은 후배는 신포동에서 애타게 부르고 단골술집의 막걸리들은 여전히 술장고에 그득했으나 난 오늘 빈집을 지키실 어머니 걱정에 일찍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