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이 낯설다
전날 술을 마시면 하루를 버린다. 이제 내 몸은 만용을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의 상태를 강변하고 있다. “네가 다음 날의 일정을 포기할 수 있다면 폭음을 하든 24시간 술을 마시든 상관하지 않겠다. 다만 나로서도 이전처럼 몸의 상태를 회복시켜보려고 애 쓰지 않겠다.”라는 게 현재 내 몸의 전언이다. 할 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언제부턴가 사진 속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교통사고 때 당한 상처가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두드러져 보이기도 한다. 그때마다 마음이 스산해진다. 자신의 얼굴이 낯설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는데 나는 내 마음의 거울에 온갖 불순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형국이다. 의식적으로라도 많이 웃도록 해야겠다.
집에서 쉬면서 두 편의 영화를 봤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쿠로코의 농구 : 라스트 게임>. 후자는 전형적인 하이틴 물이고 일본의 자뻑주의가 철저하게 관철된 영화라서 아무 생각 없이 보았는데, 전자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주인공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면서 할 말을 잊었다. 자신을 사지에 몰아넣고 그의 면전에서 아들을 죽인 동료를 찾아 복수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였지만 영화는 단순한 복수물이라기보다는 서부 개척시대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슬픈 역사를 망라한 대하역사극과 같은 느낌을 준 영화였다. 아름다운 풍광 이면에 감춰진 자연의 냉혹함과 비정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터전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처연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 그리고 인디언들에 대한 백인들의 잔혹행위들이 너무도 핍진하게 그려져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구해준 인디언 추장의 딸과 그 일행들에게 아들의 복수를 대신 맡기고 눈밭에 주저앉아 멍한 눈으로 아내의 환영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오래 기억될 영화일 것 같다. 다시 한 번 주인공 '휴 글래스'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