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품앗이라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
시집 해설을 써주기로 한 선배가 글을 보내왔다.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나에 대한 애정과 후배의 시에 대해 비평적 언술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마웠다. 글을 보기 전에는 이미 마감을 넘긴 선배의 굼뜸에 대해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았다. 시집 발간의 모든 일정은 현재 선배의 글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기 상태다.
하지만 그것이 선배의 게으름이나 무심함 때문이 아니라 좀 더 깊이 있고 신중한 글을 쓰기 위한 고민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고맙고도 많이 미안했다. 게다가 본인의 시집 발간도 예정되어 있는데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었을 때는 황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품앗이라 생각하세요. 그리고 나는 정말 오래 기다렸잖아요.”라며 다소 뻔뻔한 농담을 던졌다. 그러면서 “형하고 이렇듯 글을 주고받으려니까 오래 전 학생 때 생각이 나네요. 막 젊어지는 느낌도 들어요.”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말에 선배도 웃었다. 사실 선배는 윤동주 연구자로서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고 있고, 숙명여대에서 강의도 해야 하는 현직 교수라서 일정이 정말 빡빡하다.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 선배의 글이나 일정을 보면, (그럴 리야 없겠지만) 선배는 워커홀릭의 생활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대상포진에 걸리기도 하고 병원에 입원하기도 한 선배에 대해 워커홀릭의 상태를 즐긴다고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경우라는 걸 알면서도 워낙 강행군을 마다하지 않으니 그런 생각마저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완성까지 사흘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을 선배는 했다. 사실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어디까지나 선배의 결심에 달려 있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러마고 대답했다.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 기간이기 때문에 다소 여유가 생길 모양이었다.
오늘은 다시 몇 개의 화초들을 분갈이 해주었다. 파키라는 화분이 좀 작아서 큰 화분으로, 접란은 덩이의 크기에 비해 화분이 너무 커서 작은 화분으로 각각 옮겨주었다. 며칠이 고비가 될 것이다. 접란은 별로 걱정이 안 되는데, 파키라는 어떨지 잘 모르겠다. 최초 분갈이는 성공적이었는데, 이번에도 잘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생명 있는 것들을 다루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