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비는 이곳에도 내리고 저 먼 곳에서도 내리고

달빛사랑 2017. 9. 10. 21:00

많은 비가 집요하게 내렸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반도 쪽으로는 엄청난 허리케인이 다가가고 있다는 예보가 하루 종일 나왔습니다. 허리케인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거리를 가득 메운 차량들과 마트에서 사재기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흡사 전쟁을 만난 피난민들 같아 보였습니다. 이번에 이루어지는 엑서더스의 규모는 무려 6백만 명이 넘을 거라는 앵커의 멘트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아서 멍하니 앉아서 텔레비전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나와야 밀린 빨래를 해서 널 텐데하는 생각을 간간히 하면서 말입니다. 누군가의 불행에 이처럼 무덤덤하다니, 내가 나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공간적 거리감은 심리적 소격(疏隔)을 낳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태연하게 저녁을 준비하러 주방으로 갔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