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구 형님 회갑, 그리고 하루 종일 비
아침부터 세찬 비가 내렸습니다. 시집 원고 교정을 위해 사무실에 나올 때도 비는 쉬 그칠 것 같지 않은 기세로 내렸습니다. 빗속에서 여름이 소리 없이 가고 빗물에 실려 가을이 소리 없이 왔습니다. 가는 줄도 모르게 가고 오는 줄도 모르게 온 계절 속에서 우리는 낡아가는 걸까요. 깊어가는 걸까요. 어찌되었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나는 너무도 빈번하게 비를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그 빗물과 함께 서늘한 바람 몇 줄기도 이곳에 닿는 중입니다.
저녁, 갈매기에서 만난 소설가 선배인 조구 형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평소 함께 술 마시던 후배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늘 맏형의 품격과 여유를 보여주신 형에게 술 신세를 많이 진 후배들은 케이크와 만년필 등 선물을 준비해서 갈매기에 모였습니다. 사고로 목발 두 개에 의지해 보행을 해야 하는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형의 표정은 언제나 밝습니다. 형수님께서도 잡채를 싸들고 오셔서 잠깐 우리들과 함께 했는데, 얼마나 미인이신지 상황과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 질투가 다 났습니다.
평소 형을 좋아하는 후배들이 조금씩 갹출해서 마련한 지극히 소박한 자리였지만 그곳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무척 풍성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오늘도 역시 연극하는 후배 케이가 술에 취해 언쟁을 유발한 것이 옥에 티였지만……. 도대체 녀석은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친구들 다 떨어져나가면 외로워질 텐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람들은 즐거웠습니다. 제 주변에는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