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이 권 선배께서 사무실을 찾았다.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가 들른 모양이다. 서로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배가 문득 '간단하게' 한 잔 할 것을 제안했다. 사실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지만 영종도에서 먼 걸음을 하신 이 권 선배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정말 '간단하게' 한 잔만 할 생각으로 근처 동아식당에 들러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아뿔싸,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세 병이 되어버려 판이 커졌다. 대화를 많이 하며 마셨기 때문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애초의 계획은 어긋나 버린 것이다. 자리를 파할 때쯤 가수 오혁재와 소설 쓰는 조구 형이 연락을 해와 둘이서 다시 신포동으로 넘어갔다. 혁재와 조구 형은 중앙면옥에서 설렁탕을 먹고 있었는데, 우리가 합류하자 중화루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저녁 식사로 짬뽕 한 그릇 먹고 고량주 서너 병을 나눠 마셨다. 약간 취기가 올랐다.
중화루를 나와 길을 가다가 어제 만나 함께 밥 먹었던 인천시 문화체육관광국장 일행들을 우연히 만났다. 국장은 약간 취해있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무척 반가워하며 한 잔 더 하자며 팔짱을 껴왔다. (에고 더워라.) 우리는 근처 재즈바인 버텀라인으로 들어갔는데, 애초 그들의 목적지가 바로 그곳. 지역문화공간 탐방 차 나온 것 같았다. 버텀라인에는 평소 들렀을 때보다 무척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알고 보니 신촌블루스 밴드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던 거다. 바탠에서 리더 엄인호가 잘 가꾸어진 긴 머릿결을 쓸어올리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술 기운에 봐서 그런가 무척이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러보니 곳곳에 많은 지인들이 눈에 띄었다. 사진작가 서은미 선생도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했는데, 위에 올린 사진은 그녀가 즉석에서 찍어 보내준 사진이다. 오늘은 정말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던' 날이었다. 에고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