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술 취해 돌아온 날

달빛사랑 2017. 6. 27. 23:30

그대는 결코 지난 여름에 대한 내 기억의 경계조차 넘어오지 못할 겁니다. 나는 그대보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 그대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늘도 나는 단골술집에 들러 술을 마시며 한 번도 그대를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일행들과 되도 않는 논리로 가당찮은 주제들, 이를테면 문학과 사회와 역사와 정치 따위의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다시 담고, 흘려버리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돌아오는 길, 부고를 하나 받았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 거짓 문자를 보냈습니다. "나 지금 지방에 있어." 송신 버튼을 누르며 내 위선에 치를 떨기도 하였습니다.

 

술판의 자존심은 본래 막걸리 한 잔 값만도 못한 법이지만, 버스가 끊길까 봐 일찍 일어나면서 나는 마치 술자리를 내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듯 위장하면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5천 원의 택시비가 부담스러워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나는 늘 남들보다 일찍 술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돌아오는 길목마다 내가 뱉은 치욕의 흔적들을 그들은 모릅니다. 적빈의 계절, 나는 사랑조차 버겁습니다. 그래서 그대는 결코 여름의 기억을 넘어오면 안 됩니다.

 

내 기억은 완강해서, 내 기억은 부박해서, 내 기억은 가난해서 당신의 틈입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사랑조차 사치인 힘든 시절에 내가 견딘 이 모멸의 순간들을 그대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 없습니다. 나를 기억하지 마세요. 내 기억을 넘어오려 애쓰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