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의 초입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여느 때처럼 갠 하늘이었다. 점심 식사를 하러 갈 때쯤 비로소 하늘은 낮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확인하는 모바일 날씨 예보에 의하면 오늘은 외출시 우산이 필요할 거라고 했다. 예보는 빗나가지 않았다. 오후가 되면서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낙비가 장하게 내렸다. 한껏 달궈졌던 거리에서 물비린내가 피어올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시원한 빗줄기였다. 하지만 한 십여 분이나 내렸을까 비는 이내 그쳤다. 이곳의 하늘이 맑은 빛을 되찾기 시작할 무렵 천안의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인천을 떠난 빗줄기가 천안에 당도한 모양이라며 기뻐하는 문자였다. 베란다 문을 열어놨는데 빗줄기가 얼마나 거센지 빗물이 베란다 안으로 들이쳐 홍수가 날 지경이라는 말도 했다. 잠깐 동안 인천에서 기세를 뽐내던 소낙비가 천안에 당도하여 똑 같은 얼굴과 똑 같은 목소리로 후배를 만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를 찾았던 빗줄기라면 조만간 천안을 뒤로 하고 더 아랫녘으로 하강하거나 스리슬쩍 스러질 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장한 빗줄기를 만난 것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예보에 의하면 이번 주말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비를 기다리는 마음들은 오매불망 빨리 장마가 시작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몸이 아픈 후배는 비가 내리면 편백나무 숲에 갈 수가 없기 때문에 한편으로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후배에게는 편백나무 숲속을 거닐며 음악을 듣거나 평상에 누워 책을 읽는 것이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인데 비가 내리면 그것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날이면 망연하게 창밖을 내다보며 더욱 마음의 지향을 놓치고 헛헛해 할까 나는 그것이 걱정되는 것이다. 기도가 더욱 절실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