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학연과 지연에 대한 단상

달빛사랑 2017. 3. 29. 23:00

온통 숫자만 가득한 문건과 자료를 앞에 놓고 한 시간 반 동안의 회의를 했다.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가 도합 27번 들렸고, 7개의 안건은 별다른 이견 없이 처리가 되었다. 고등학교 후배 회계사가 사외감사를 맡았는지 다가와 인사를 했다. 동문 모임에서 두어 번 만났던 후배였지만 이름이 생각나질 않았다. 명함을 받아서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회의가 끝나고 미추홀극장 이관영 관장과 술자리를 가졌다. 이 관장 역시 알고 보니 상인천 중학교 2년 후배였다. 인천이란 지역사회는 얼마나 좁은지 정치계든 문화예술계든 그 속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다 보면 반드시 동문들을 만나게 된다. 무척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학연이 하나의 패권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인천의 경우 제고출신과 인고출신들이 학맥을 매개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 실체가 있는 카르텔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인천에서 제법 역사가 있는 학교다 보니 졸업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고 그들이 알게 모르게 인맥을 형성하여 서로의 이해관계를 충족시켜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화재단만 해도, 작년까지 대표이사와 문화사업본부장, 아트플랫폼 관장, 강화역사재단 사무국장, 재단의 선임이사 서너 사람이 모두 제고 동문들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인천시장이 바로 제고출신이다. 그러니 가끔 정치건달들이나 문화건달들이 자신의 정계 진출이나 사업적 이익을 위해 공직에 포진해 있는 동문들을 접촉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비일비재 했다. 물론 동문끼리 선의의 경쟁을 하거나 비판적 조언을 해주는 것이야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애교심의 발로일 수도 있고 인간적 배려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깜냥도 안 되는 인사들이 부당한 청탁을 하거나 받고, 그 과정에서 반사적 이익을 도모하려 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계야 자기 영역에서 예술적 능력을 인정받으면 되는 것이니 좀 덜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세계에서도 나름 기관장 자리나 보직 임명을 둘러싼 막후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시인인 나는 뭐 그리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인사가 아니다 보니 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량한 자리에 대한 명예욕은 항상 경계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것은 본원적인 욕망이라는 얼굴로 윤색되어 나타나곤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천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어딜 가도 아는 사람은 많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