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수상하게 깊어가는 가을 (10-23-수, 구름, 맑음) 본문

일상

수상하게 깊어가는 가을 (10-23-수, 구름, 맑음)

달빛사랑 2024. 10. 23. 23:21

 

혈압약과 고지혈 약이 떨어져 오전에 병원과 약국에 들렀다. 혈압은 이번에도 정상 수치(120-80)가 나왔다. 의사도 “혈압 좋네요” 하며 “지난번과 똑같이 처방해 드릴게요” 했다. 체중이 많이 늘었는데도 정상 수치가 나와서 일단 다행이었다. 진료실을 나올 때 의사는 “다음에 오실 때는 공복에 오세요. 혈액검사 한 번 해보게요” 했다. 그러겠다고 대답했으나 다음 달 즈음에 건강검진을 받을 예정이라서 혈액검사를 한 달 만에 또 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즉, 늘 두 달 치를 처방받아 왔으니, 다음 내원일(來院日)은 12월 22일 즈음인데, 의사 말로는 바로 그날 혈액검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11월에 받게 될 정기검진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검사라면 굳이 비슷한 검사를 한 달 사이에 연이어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일산의 Y에게 전화가 왔다. 지난번 류재형 선배의 사진 전시장에서 만났을 때, 바빠서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누고 급하게 헤어져서 서운했다며 전화한 것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받은 전화라서 무척 반가웠고 , 무엇보다 먼저 연락해 준 게 너무 고마웠다. 그간의 안부와 최근 동정을 물으며 시작한 대화가 제법 길게 이어졌다. 대화를 통해 그녀의 어머님이 요양원에 계시다가 코로나로 돌아가셨다는 것과 큰언니가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작년에 오픈한 갤러리의 경우 아직은 초대전 중심의 전시가 대부분이고 대관 전시가 많지 않아서 운영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 등등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하다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우리 역시 전화를 끝낼 때는 ‘조만간 같이 식사 한번 하자'거나 ‘언제 한번 일산에 놀러 와’와 같은 의례적인 말들을 주고받으며 끝냈다. 다만 마음의 변화가 있었다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일산에 갈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Y가 과거의 기억을 환기해 주고, 표정은 보지 못했으나 그녀의 목소리에서 혼자 사는 여성 특유의 외로움이 느껴져서 조만간 그녀가 인천에 오거나 내가 일산을 방문할 듯한 예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예감일 뿐이지만, 그리고 예감은 늘 어긋날 수 있는 거지만, 아무튼!

 

절기상으로 오늘이 상강이었다. 오후가 되면서 잠깐 흐렸지만 대체로 맑았고, 바람도 기분 좋게 부는 날이었다. 서리는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 속에서 가을은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냈다. 비록 아직도 손해를 회복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내가 가진 종목 모두가 빨간불로 장을 마감했다. 가장 큰 손해를 보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이 오늘은 가장 많이 올랐다. 이런 날도 있어 견디는 거다. 다만 저녁에 상훈의 전화를 받고는 다시 우울해졌다. 아끼는 후배이자 승미의 남편이기도 한 상우가 며칠 전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다가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사랑하는 고교 후배 갑주가 3년 전 췌장암으로 사망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데, 상우 욕시 같은 암을 진단받은 것이다. 만약 잘못되면 아내인 승미는 또 어쩌라고...... 하필 암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췌장암이라니,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기적은 있는 법, 끝까지 암 극복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도 제목이 하나가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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