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60代 유감 (10-5-토, 맑음) 본문
가끔 옛날 생각나서 마음이 푹 가라앉을 때가 있다. 가령 드라마나 영화에서 청춘남녀가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거나 현실의 장벽을 깨부수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왜 그 시절에 저 드라마나 영화 속 젊은이들처럼 내 앞에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물론 그 당시의 나 역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야 내가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영화나 드라마 속 사랑은 본래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실제 나의 사랑과 영화 속 사랑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겠지만, 나이 들면 합리적 사고의 틈을 비집고 자꾸만 말도 안 되는 상상이 꼬리를 잇는다. 아마 늙어가는 것에 대한 비감한 심사가 작용했기 때문이겠지.
살면서 화양연화 시절을 그리워하는 거야 장삼이사들의 상정이겠지만, 유독 60대에 접어들면서 '아, 옛날이여!'를 자주 읊조리게 된다. 체력은 떨어지고 기억력은 무뎌지고, 각종 성인병의 위협에 먹는 알약은 자꾸만 늘어나고, 자식은 점점 나로부터 멀어지고, 친구와 후배들의 부고가 낯설지 않고, 부모님 생전 잘못한 것만 자꾸만 기억나는 우울한 나이대가 바로 60대라는 생각이다. 이런 우울한 생각의 일차적 원인은 무엇보다 체력과 사고력의 저하다. 젊었을 때는 체력이 떨어져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잘 쉬고 잘 먹으면 금방 회복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체력이 떨어진 건 나의 게으름 탓만이 아니라 노화의 결과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 자주 비감해진다. 눈물도 많아졌다. 50대까지만 해도 눈물 나는 감정을 소중하게 여겼다. 신파적 감상조차 내 문학의 원천이고, 세상에 공감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을 품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사랑에 관한 믿음도 옅어졌다. 아니 믿음이 옅어졌다기보다 내가 '원하는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희미해졌다는 게 솔직한 말일 것이다. 자신이 없다. 내가 그리는 사랑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마음을 품다 보니 애틋함도 그리움도 점점 무뎌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안타까운 마음도 별로 없다. 그저 편하다. 혼자 지내는 삶에 익숙해진 것이다. 물론 나를 좋아하는 이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그녀들은 나의 이력과 인맥, 사회적 지위 등을 통해 뭔가를 얻으려고 한다. 나를 활용적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자체를 나는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만물은 유전한다는 말에서 인간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유한한 인간이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고 추해지는 것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60대는 60대 나름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솔직한 얼굴대로 살아가면 된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가끔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람에 저항하는 풀과 나무와 동물들처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그렇게 자연스레 쓰러지고 피하다 넘어지고 인간답게 좌절하며 살면 된다. 그러니 60대를, 희로애락에 담담해질 수 있는 나이라느니,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나이라느니 하는 말을 하지 말 일이다.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가장 절실하게 체감하는 나이가 60대인데, 그 시간이 어찌 여유롭게 보이기만 하겠는가.
이제 나는 멋진 삶에 관한 강박을 버리고 싶다.
물처럼 바람처럼 흐르고 스미고 흔들리면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살고 싶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지금 무척 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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