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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심의 유감 ㅣ헛소문 본문

일상

심의 유감 ㅣ헛소문

달빛사랑 2021. 4. 14. 00:25

 

모 기관이 추진하는 사업 심의에 참여했다. 매번 느끼지만 심의는 힘들다. 수백 건의 자료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도 그렇거니와 정량화된 자료만으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드러나진 않았지만) 응모자가 지닌 성실성은 물론 사업 추진에 대한 진정성까지 헤아려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피곤한 노동이다. 하지만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놓치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 공모도 결국 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나저나 동아리나 강사에게 지급되는 총액이 맥시멈 2백만 원인데, 이 알량한 금액을 지급하기 위한 심사에도 청탁을 넣은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도 두 건 정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연락해 온 사람이 누군인지 알고는 그저 웃고 말았다. 이 정도 규모의 공모 수준에도 가장 공정 해야할 공공기관 비서실에서 연락을 해왔다니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규모가 크면 청탁해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청탁은 발본되어야 할 악습이다. 다만 이번 헤프닝은 아마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고 싶은 허영심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봤지. 나 이런 것도 해줄 수 있어.’라는 똥폼을 잡고 싶은 뭐 그런 심리. 수억 원이 오가는 관급 사업이나 계약 건에 대해서는 오죽할까. 심의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별 말이 없었으면 될 수 있는 일인데도 굳이 관여하여 해당 응모자를 색안경 끼고 보게 만들었으니 이게 도움을 준 건지 역효과를 낸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10시에 시작한 심의는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야 비로소 끝이 났다. 하루가 다 갔다. 피곤했다.

 

 

 

구월동으로 넘어와 갈매기에 들렀다. 문일 형과 후배인 광석, 수범이 선착해서 술 마시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소주 5병, 맥주 두 병, 막걸리 한 병이 놓여있었다. ‘갈매기가 1차가 아니었을 테고, 그렇다면 이미 취해 있을 양인데……’ 생각하며 아는 체를 했더니 사장인 종우 형이 지원군을 만난 장수처럼 “여기 잠깐 앉아요. 자리 데워 놨어요.” 하며 반가워했다. 내심 일어날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모양이다. 문일 형 뵌 지도 오래됐고 해서 잠깐 앉았는데, 이미 취해서 혀가 꼬인 수범이 대뜸 “문 선배 혹시 교육청 그만뒀어요? 그런 소문이 파다하던데요.” 하고 물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동시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친구가 본디 주사가 심하고 분별이 없어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지 않던 나였지만, 하도 황당해서 “누가 그래?”하고 물었더니 “바보주막에서 술 마시는데,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했다. “하여튼 놀아도 비슷한 수준들끼리 논다니까.” 하고 말았지만, 은근 짜증났다. 늘 그렇고 그런 술 취한 바보의 주사라고 생각해 버리면 말 일이지만, 입이 가벼운 이 녀석이 이곳저곳 다니며 사실과 다른 헛소문을 퍼뜨릴까 봐 내심 걱정이 되었다. 소문은 부풀려지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마치 교육청 내부에 내홍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들어간 지 6개월밖에 안 된 특보가 그만두었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제멋대로 추측할 게 뻔한 일 아닌가. 하여튼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놈들과는 상종을 말아야지. 원. 막걸리가 당기지 않아 소주 한 병과 맥주 두 병을 섞어서 마시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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