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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편지- 현수에게 본문

일상

편지- 현수에게

달빛사랑 2010. 10. 29. 10:30

 

 

친구... 나의 가을을 말해줄까?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약간은 불안하고, 누구나처럼 안락을 꿈꾸고 있다네.
나는 아주 비겁해졌어. 심지어 희미하게 남은 싸움의 의지마저
안온함을 위해 팔아버렸거든. 망할...
자네의 가을은 어떤가? 하긴 자네가 붙잡고 있는(아니 붙잡혀 있는)
'들뢰즈'의 철학이 요즘같은 시대에 환금성을 갖기는 어려울 텐데....
몸은 고되지만, 영혼은 살찐다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맨트는 듣고싶지 않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냉혹한 현실을 '접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자신만의 내부 세계로 '우아하게' 도피하거나, 혹은,
'장렬하게' 굴복하거나... 나는 현재 외관상으론, 굴복을 택한 셈인데,
자네는 혹 내부 세계로의 도피를 택한 건 아닌지...
'도피'라는 말이 맘에 안 든다면, 그냥 '지향'이라고 해두지.
사실 요즘 나는, 긴긴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끝없이 밀려오는 졸음처럼, 알 수 없는 허허로움에

몸도 맘도 자꾸 까라지는 느낌이라네.

끝모를 구덩이로 추락하는 느낌 같다고나 할까.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능청스런 가을 햇살도, 자기들끼리 수근대다가
나를 보면 일제히 입을 다무는 주위의 모든 사물들도 그래서 겁이 나.
나의 너덜너덜해진 희망마저 강탈해가려는 '유혹의 집요한 포석'도

실은.. 좀 두려워. 그것은 내 잠자리와 꿈과 공상마저 간섭을 하고 있어.
얼마나 집요한 추근거림인지.... 내 정서의 치명적 헛점을 개관한 듯 싶어. 
넋두리가 길었군. 며칠 후면 자네를 만나게 될 텐데...

그때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하네. '이야깃거리'들을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을 거야.
가슴 속에 품어둔 것들만 하나씩 꺼내도 며칠은 갈 테니까 말이야.

될 수 있으면,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힘이 되는 만남이 되길 기대할게.  

그럼 그날, 거기서 보자구. 항상 너만은 넉넉한 자유로움 속에 늘 머물길 바라..

내 맘 알지, 친구? 그럼 그때까지... 잘 지내길...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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