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아... 광주여..! 본문
묵념 5분 27초
-황지우 |
이 작품은 제목만 존재할 뿐, 싯구가 보이진 않는 시다.
그렇다면, 시인은 이런 형태의 시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자 했던 걸까?
그것은 아마도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숫자 '5'와 '27'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관련될 것이다.
5월 27일... 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의 마지막 배수진이었던
전남도청이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된 날...
윤상원을 비롯한 많은 시민군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다시 말해, 학살의 피날레가 진행된 날인 것이다.
이후 지도부를 잃은 시민군들은 그 예봉이 꺾이고,
기나긴 '죽음의 시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날, 그 자리, 그 사람들을 위해 묵념.. 5분 27초......
그리움 뒤에는 무엇이 남아야 하는가
그리움을 위한 3중주ㅡ그들, 선배, 그리고 '나'
버스를 대절하여 그들은 광주로 떠났다
실직한 선배는 방안을 뒹굴며
묵은 잡지를 뒤적거리다 낮잠을 자고......
그들은 광주에 도착하여 새벽 무등산에 오른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옛 시절의 문건이
책장의 서랍에서 불쑥 발견되었다
낯선 얼굴, 낯선 몸짓으로
그들을 맞는 광주, 잠든 도시의 평온함
속의 숨죽인 혹은 위장된 태연함
선배는 생활정보지를 손끝으로 짚어 가며
숙독을 한다. 진지한 위폐검사원처럼 그러나
그의 손끝은 매번 공허하다
공허한 표정으로 나는 묵은,
문건들에게 인사를 한다
문건의 문구가 두루뭉실해질수록
정세도 우리들의 실천도 두루뭉실해졌다
광주의 슬픔도 그렇듯 무뎌진 건 아닐까
싸움이 없는 시대의 향수이고 그리움으로,
한때의 훈장으로, 그리하여 끝내는 자괴감으로
한숨을 내쉬는 선배의 발등으로
열린 창으로 날아든 꽃씨 하나 살포시
앉았다 미끄러진다.
미끄러져 깨진
발등을 문지르며 무등의 정수리에서
미명의 광주를 바라보며 그들은 다짐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슬픔,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에 대하여.
선배는 꽃씨를 집어
창밖으로 날리며 생각한다 무리 속의 힘,
정제된 일꾼 들 속에 함께 할 때의 든든함,
때절은 문건 속의 당당한 표현, 다시
살아나야 할 그 공세적 이념의 올곧음을 믿으며
내가 나에게 묻는다 그리움 뒤에는,
이 눈물나는 그리움 뒤에는 무엇이 남아야 하는가
돌아오는 그들의 잠든 이마 위로
가장 밝은 광주의 밤별 하나 반짝 내려와 박힌다.
-달빛사랑. Moon.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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